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문단 편집) == 의미 == >fidem, si poteris, rationemque conjunge >할 수 있는 한, 신앙을 이성과 결합시키십시오 >---- >성 [[보에티우스]] >42. QUAMVIS autem praedicta veritas FIDEI CHRISTIANAE humanae rationis capacitatem excedat, haec tamen quae ratio naturaliter indita habet, huic veritati contraria esse non possunt. >앞서 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가 인간 이성의 능력을 넘어선다 할지라도,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이성이 지니는 [진리]는 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상반될 수 없다. > >...46. ...'''Non igitur contra cognitionem naturalem aliqua opinio vel fides homini a Deo immittitur.''' >'''결과적으로 신은 자연적 인식에 상반되는 어떤 견해나 신앙도 인간에게 주입하지 않는다.''' >---- >-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2 ''Summa Contra Gentiles''}}} I,7. n.42, n.46 신창석(역)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서양철학사상 파트에 당당하게 '''중세에는 모든 것이 [[신학]] 중심으로 되었기 때문에, [[철학]]은 신학보다 하등하다는 의미'''라고 해설하고 있고, '[[암흑시대|그래서 중세는 암흑기]]'라는 뉘앙스를 풍겨준다. 그러나 최소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맥락에선, 이 문장은 신학 하려면 철학적 소양을 갖추라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철학의 독립성을 부정한 것도 아니며, 신학과 철학 사이에 서열 관계를 설정한 것도 아니다. 오해를 낳는 부분은 '''[[시녀]]'''(handmaid)라는 용어인데, 현대에 '시녀'라는 단어가 가지는 천한 어감이 이 문구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하지만 시녀는 당시 전혀 천한 직종이 아니며, 주인보다 한단계 낮을 뿐 충분히 고귀한 계급에서 맡는 직업이었다. 일반적으로 왕실의 시녀는 귀족 자제들이, 귀족 집안의 시녀는 기사 계급이 맡았다. 왕족의 '시녀'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하인이 아니라 여성 왕족들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이들이었다. 애당초 "중세 유럽에서 시녀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했냐"는 역사학적 탐구를 논외로 하더라도,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은 단지 신학이 철학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한 받아야 한다는 담백한 서술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학이랑은 분리된 철학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발언도 아니다. 신학대전의 논법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수학은 물리학의 시녀", "통계학은 경제학의 시녀" 등 얼마든지 확장해나갈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수학의 존재의의가 물리학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며, 통계학은 경제학과는 별개로 존중 받을만한 학문인 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말의 원뜻은 철학은 신학의 '졸개'나 '하수인' 수준 밖에 안되는 무가치한 학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의 여러 이론들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동반자''' 정도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현대적인 뉘앙스로 되살리자면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철학적 소양을 갖춰라" 수준의 발언이므로 사실 다른 학문에 비해 '''철학을 상당히 띄워주는 발언'''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쨌거나 시녀는 시녀이니, 결국 토마스는 철학의 독립성을 부정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철학과 신학의 관계,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명 중세에 다양한 견해가 있었으며, 이 중에서는 철학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견해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대에도 철학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견해가 존재하였었다. 그러나 최소한 토마스는 이러한 견해를 단호히 반대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톨릭 스콜라학에서 교과서적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게 토미즘 외의 견해들을 모조리 이단으로 본다는 건 아니다. 토미즘 외에도 가톨릭에서는 스콜라학의 학문적 다원성을 인정한다. 다만 토미즘이 스콜라학의 '유일하게 강제된' 해석은 아니더라도 '교과서적' 해석인 건 분명하다.] >여기서 철학이란 토마스가 『대이교도대전』에서 규정하고 이는 바와 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식''''{{{-2 secundum quod huisusmodi sunt}}}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책 속 주석)『대이교도대전』 II,4(1).] 즉, 불을 오직 불로서 볼 뿐, 하느님의 높으심을 위한 어떤 순수한 상징으로 보지 않는다. >---- >-Josef Pieper[* 1904-1997. 독일의 철학자이자 스콜라학 연구자. 20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을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그는 누구인가』{{{-2 ''THOMAS VON AQUIN: Leben und Werk''}}}, 신창석(역), 83쪽 >예를 들어 신학이 철학과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거나, 어떤 잘못된 지배 요구를 선포하는 것 등을 쉽게 상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상상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토마스는 당시의 전환기에 신학의 이러한 부당한 요구에 대항하여 철학의 독립성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를 들면 당시에는 (지금도 늘 있지만) 철학의 주제는 신학적으로 중대한 것이나 또한 신학에 필요한 것으로 한정시켜야 하며, 신학자는 철학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이해를 최소한 이런 주제의 범위 내에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보나벤투라가 그의 유명한 저서 『신학에로의 기술적 환원에 대하여』{{{-2 ''De reductione artium ad theologiam''}}}에서 구사하고 있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견해다. 토마스는 바로 이러한 견해를 반대하며, 그것도 단순히 철학적 명분을 들어서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철학을 필요로 하는 신학 자체적 명분을 들어 이를 반대한다. >사람들은 실제적인 진행 방식 속에 말없이 내포되어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어떤 신학자도 신학과 철학에 대한 단순한 정의를 근거로 하여, 어떤 철학자이거나 자연적 인식 일체를 신학자에게 중요하다거나 또는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앞세울 수 없을 것이다. 신학자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필요로 하며''', 다른 한편 세계와 인간에 관한 모든 오류는 신학자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으며, 나아가서 숙명적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책 속 주석)『대이교도대전』 II,4. 참조.] 토마스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학이 현실적 학문 연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도 이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책 속 주석)''Contra impugn''. 3,4; Nr.400.] 여기서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로 쓰임새가 있는 '성스런 무지{{{-2 無知}}}'{{{-2 sancta rusticitas}}}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예로니무스를 토마스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인용하고 있다.[* (책 속 주석) 같은 책, 3,4; Nr.399.] 둘째로, 신학자 역시, 계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묻혀 있는, 결코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그리고 항상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를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어떤 방향에서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무도 미리 말할 수 없다. 이는 아마도 특정한 철학적 또는 학문적 인식에 근거하여 드디어 드러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인식은 결코 신학에 의해 계획될 수 없을 것이다. >---- >-Josef Pieper, 같은 책 245-246쪽. 애당초 토마스는 '신학'을 '계시'와 동일시하지도 않았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계시'는 신에게서 온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인간의 언어로 하는 것이며, 계시를 해석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학은 당연히 인간적인 약함을 지닌 학문이었고, 마땅히 인간적인 또다른 학문인 철학과 연대해야 하는 것이며, '''결국 신학 역시도 철학에 시중을 들게 된다.''' 토마스의 관점에서 철학과 신학은 서로를 노비처럼 부리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진실한 우정의 관계였다. >그러므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에 의하면, 계시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신학은 사실 지혜 가운데서도 드높은 형태의 진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은 신학 자신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도 여러 학문과 철학의 시중을 필요로 한다. 신학자 역시 신학을 수행하는 가운데, ''''우리 이성이 가지고 있는 결함에''''{{{-2 propter defectum intellectus nostri}}} 부딪치게 마련이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신학 역시 독자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자연적 인식의 정보를 '''필요로 한다.''' 신학은 자연적 인식을 듣고 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가운데, 자연적 인식에 '''시중들게''' 되며, 또한 그것을 '''전제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누가 누구에게 시중드는가라는 공격적인 물음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 >-Josef Pieper, 같은 책 247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